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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왕상 19:1-12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왕상 19:1-12 +
현대인들을 광범하게 공격하고 있는 한 가지 질병에 대하여 묘사하고자 합니다. 이 병이 무슨 병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병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일상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일상을 위협하게 되는 질병입니다. 이것이 점점 발전되면 우울증이 오기도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이 병에 걸리면 몹시 피곤 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무력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수면 장애를 경험하고 자주 격한 짜증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이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선한 목자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일” 이라고 노래합니다. 소생의 반대는 낙심 혹은 낙망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소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지금 낙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이런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의 거인들조차 이런 낙심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도 한때 이런 우울증 곧 낙심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시편 42편 11절에 보면“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영웅이었던 엘리야도 이런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의 본문4에서 그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 달라.”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조상이 바꾸지 못한 이 나라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독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이런 낙심에 빠질 때 어떻게 소생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무슨 일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 우리의 낙망해버린 우울한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선한 목자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1. 육체의 피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낙망은 반드시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원인이 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정신적으로 낙망하는 것은 신체적인 이유일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도 아마 이런 삶의 정황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이 우울증을 경험하게 한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싸움으로 탈진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마무리되고 엘리야의 승리가 확실해진 시점에서 그는 오히려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은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선한 목자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울증에 낙망하는 엘리야의 소생을 위하여 선한 목자이신 주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5절에 보면 그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이것이 목자의 마사지가 아닙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쉬게 하셨습니다. 본문 6-7절“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의 치유는 일차적으로 육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왜요? 그가 육체적으로 탈진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먼저 내리신 처방은 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소생을 도우신 하나님은 이제 그를 육체적으로 회복시킨 다음 그를 호렙산으로 가게 하십니다. 둘째 처방을 위해서였습니다.
2. 영적인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낙심에서 소생하는 길이 육체적인 관리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소생을 시작한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은 다음 처방을 준비하십니다. 곧 영적인 처방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10절입니다.“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교제요, 교통입니다. 바로 목자와 양 사이에 교제가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우울증이 치료되는 순간입니다. 그가 다시 소생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3. 주님의 임재가 경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엘리야의 사적을 읽어 내려가며 떠오르는 피할 수 없는 의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갈멜 산정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합하면 850대 1의 결전에서 그렇게도 당당했던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서는 왜 이리도 비참하게 자기 생명을 포기할 우울증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로뎀 나무 아래 주저앉은 그곳은 적막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외로웠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거나 외출중으로 지금 여기에는 부재중인 분으로만 느껴진 것입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하나님은 아주 특별하신 방법으로 당신의 임재를 엘리야에게 계시하십니다. 왕상19:12절을 보십시오.“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세미한 소리였습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던 그에게 하나님은 바람도 불도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넌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함께 있는 거라고.”“그가 내 영혼을 소생 시키셨도다.”아멘 우리 모두에게 이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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