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실로암 못 요9:1-7 +
실로암 못 요9:1-7 +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만났는데 이렇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명령하셨습니다. 소경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좇아 실로암으로 가기 전에는 소경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현재형으로 그와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로암 못으로가 눈을 씻은 순종을 통해 그는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밝은 눈으로 지금 자신과 함께 계신 주님을 똑바로 볼수 있었습니다.
밝은 눈으로 주님을 직접 볼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사건입니까. 그렇다면 실로암 못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실로암 못에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 소경이 실로암 못에서 밝은 눈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예루살렘 동문 밖 기드론 골짜기에는 기혼이라는 샘이 있습니다. 이곳으로부터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것이 바로 실로암 못이었습니다.
1. 가장 낮은 곳에 거하라.
물은 절대로 높은 곳에 고이는 법이 없습니다. 흘러내리는 물은 반드시 낮은 곳에 고이게 마련입니다. 실로암 못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눈을 신는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눈을 씻을 도리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소경에게 실로암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샘으로 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 가장 낮은 곳에 거하라. 가장 낮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는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소경이 주님의 명령을 쫓아 가장 낮은 것으로 가서 낮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그 즉시 밝은 눈으로 지금 자신과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소경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데도 그 주님을 뵐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나 자신이야말로 날 때부터 영적 소경은 아닌가. 생각해봐야합니다. 실로암 이라는 단어는 보냄을 받았다는 뜻임을 본문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실로암으로 가라. 가장 낮은 것으로 가라. 낮고 낮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 우리가 진정 소경된 삶을 청산하기 원한다면? 진정 우리의 눈뜨기를 원한다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을 밝은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낮은 마음으로 실로암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낮은 마음에 소유자만 주님을 뵐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됩니까?
2. 주님께서 바로 낮은 곳에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실로암보다 훨씬 더 낮은 짐승에 먹이통인 구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실로암보다 더욱 더 낮은 빈촌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실로암보다 더 없이 낮은 빈한한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실로암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형수의 형틀인 십자가 위에서 사지가 찢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임에도.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주님 그분이야말로 가장 낮은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나의 시력이 설령 2.0 이라 할지라도 높은 마음으로는 결코 그분을 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낮은 마음을 갖기만 하면 설령 소경이라 할지라도 밝은 눈으로 그분을 똑바로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사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로암으로 내려간다는 것 .낮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0:28절 말씀에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아멘.아멘
우리가 실로암으로 내려가 낮고 낮은 마음 .남을 섬기는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질 때 바로 그 마음의 눈으로 이 땅에 우리를 섬기로 오신 주님을 밝게 뵙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아멘! 아멘!
3. 주일 날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우리 교회는 알다시피 청소부가 따로 없습니다. 장로님들과 많은 권사님과. 집사님들. 교역자들이 직접 청소하고 모든 것을 정리 정돈하고 있습니다. 봉급을 받는 사무직원도 없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자원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차장에서 주방에서 교회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분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그분들의 섬김이 있기에 오늘 이 시간에 이처럼 은혜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 날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진정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라면? 찬송을 부르고 설교 듣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참된 예배는 반드시 섬김을 수반하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교인 모두가 성가대원이나 교사가 되어 섬겨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계단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앞자리 중간 좌석부터 앉는 것 또한 훌륭한 성김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닮겠노라 결심하고 찾아오는 교회에서마저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가정이나 일터에서 남을 섬길 수는 더더욱 없고 남을 섬기지. 못한 자가 일주일동안 밝은 눈으로 주님을 뵙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이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주님을 믿는 자로서 매일 실로암에서 눈을 씻으므로 밝은 눈으로 주님을 뵙고 좇는 자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