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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린이관. 마18:1-6 +
예수님의 어린이관. 마18:1-6 +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워오고 있던 어느 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유명한 질문을 하신 후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오시던 도중에서 그분은 제자들 사이에 "천국에서 누가 더 큰 자가 될 것인가?"라는 논쟁을 듣게 되셨습니다. 이런 제자들에 대하여 진정한 천국백성의 자격을 가르치기 위한 시청각적 샘플로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 앞에 세우시고 어린이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이관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를 통한 '천국 백성관'을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 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1. 어린이는 우리가 배워야만 할 대상입니다.
우리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생각 할 때에 즉각적으로 우리가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런 발상을 역전시키는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히려 어린이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어떤 마음의 자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자질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신학자들은 대체로 세 가지 특성을 지적합니다. 첫째는 겸손함, 둘째는 단순성, 세 번째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자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겸손을 생각해 보십시오. 겸손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어린이들은 단순하고, 솔직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도움을 호소하고 의존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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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닙니다. 어린이는 희망입니다. 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가족, 교회,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0:14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끝까지 모세를 살리고 키움으로, 장성하여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져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희망이 넘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내일의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까?
2. 어린이는 우리가 영접해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선포하시고, 어린이들,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는 오히려 더욱 영접되고 환영되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양육에 대상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은금보다 은총을 소중히 하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은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안겨줍니다. 사실 황금은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황금은 빛도 나고, 값어치도 있어서 분명 그 위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은,금을 목적화하기 때문에 이 은,금이 사람들을 재앙으로 몰고 가고 불행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훈합니다. 금, 은보다 은총을 더 중히 여기라... 은, 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이 무엇입니까? 은총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마음이며, 사람으로부터도 사랑 받고, 세상으로부터도 사랑을 입는 생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같은 축복을 입어야합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은총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은총의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입고, 학생은 스승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군인은 상관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하고, 정치인들은 국민들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힘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자본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야곱이 이 은총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요셉이 이 은총 때문에 축복의 인생을 살았으며, 아브라함이 이 은총을 입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은총은 값있고, 무게가 있고, 영원하고, 충만한 뜻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3. 어린이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는 적극적으로 보호되지 않으면 안될 대상입니다. 본문은 소자를 영접하라는 선언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본문6-9절까지에서 예수님은 매우 강경한 어조로 하나의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한마디로 그들을 '실족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족함이라는 말은 광범한 의미에서의 보호를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영적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기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도움이 이 영적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문맥에서 주님은 이 도움을 베풀지 못하고 실족케 하는 것은 영생과 영원한 멸망의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이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생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의 육아문제에 있어서 무관심이상의 큰 문제는 과잉보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닌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보호를 받고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일--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 대한 영적 보호야말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기도의 옷을 입혀서 세상에 보네야 합니다. 히 11:20~21을 보면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부모의 기도로 성장했습니다. 부모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부모가 기도하면 자녀들은 믿음의 거목이 됩니다. 기도하면서 흘린 부모의 눈물은 부모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됩니다. 기도로 키운 자녀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상 받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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