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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 요18:37-19:4 +
본디오 빌라도. 요18:37-19:4 +
조선왕조 500년이 우리 민족 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한 가지만 말해 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일 것입니다. 한 민족이 고유한 자기 말과 글을 갖지 못할 때, 고유한 문화와 전통과 그리고 역사를 지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결국엔 소멸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타민족에 동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의미에서 1446년 9월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중요성과가치, 그리고 우리 민족역사에 대한 기여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오히려 모자를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창제가 이처럼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고해서, 전 국민적인 합의나 지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반대론자들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최만리는 1444년 2월 20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는 예부터 대국 중화의 제도를 본받아 실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아무 관련이 없는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은 학문에도 정치에도 아무 유익함이 없는 줄로 압니다. 더구나 글자 제정은 의견을 두루 청취하면서 시간을 두고 가부를 논해야 마땅한 데도 너무 성급하게 발표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 측에서 시비를 걸어올까 두렵습니다.
그의 심중에는 우리 민족 우리 문화보다도 중국문화가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의 심중이 중국보다 우리 민족을 더 우위에 두었더라면 그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인생이란 곧 '결정'이요 '판단'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고 또 많은 것들을 판단해야 합니다.
1. 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
본문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요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사형에 처해 달라며 끌고 온 예수님을 심문해보았지만, 빌라도 총독은 아무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0절의지적처럼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죽이려 함을 빌라도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월절이면 죄수 한 명을 특사로 풀어줄 수 있는 전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하였지만, 유대인 군중들은 오히려 강도 바라바의 특사를 요구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총독 빌라도는 군병들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하게 한 뒤,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다시 군중들 앞으로 끌고 가이렇게 외쳤습니다.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 없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로 혼을 내 주었으니 이제 그냥 풀어주면 어떻겠느냐는 식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2. 총독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예수님의 석방을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앞에 세워 놓고 무죄냐, 혹은 유죄냐, 사형이냐, 아니면 석방이냐를 판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고서 나름대로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끝내 자신이 정당하지 못함을 잘 알면서도 사형을 언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빌라도가 더 염두에 두었던 것은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자기 자리였습니다. 애써 차지한 총독이란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보다는 불의한 다수를 만족케 하는 일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만이최선의 선택이었노라고,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스스로 자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리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만 이 신앙고백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은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지난 이천년 동안 전세계의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한 결같이 정죄되어 오고 있습니다.
3. 빌라도가 그처럼 지키기를 원했던 그 자리가 평생토록 지켜주었습니까?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로마 황제로부터 파면 당한 뒤, 승진이나 다른 보직을 받지 못한 채 갈리굴라황제때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못 박으면서까지 고수하려한 자리였지만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 없음을 누구보다도 확신하고 예수님의 석방을 세 번씩이나 시도했던 사람이었으므로, 만약 빌라도가 자기에게 연연하여 불의한 군중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풀어드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에게 빌라도 총독이 반역자를 살려 주었다고 모함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빌라도총독은 파면을 당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영원한 의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사후 이천년이란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그토록 연연했던 총독자리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중요치 않은 것을 중요하다 착각하다가, 그는 막상 중요한 모든 것을 송두리 째다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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