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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 고전1:17~25 +
십자가의 능력 고전1:17~25 +
교회가 가장 중요한 복음은, 십자가는 증거하지 않고 비기독교적인 사회사업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구제, 사회사업, 약자를 위한 배려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의 증거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구제하고 사회사업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수적인 사역입니다. 본질은 십자가의 증거에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가장 중요한데 이 십자가에 접근하는 방법이 세상에서는 전혀 옳지 않은 접근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22, 2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라고 그랬잖아요. 세상에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크게 세 가지 접근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접근인데 표적을 구하는 접근입니다. 또 하나는 헬라인들의 접근인데 이것은 지혜를 구하는 접근입니다. 그리고 우리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라고 믿는 사람들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붙드는 접근을 합니다. 이제 십자가에 반하는 두 가지 접근(헬라인과 유대인)의 허구와, 십자가를 부르짖고 외치는 것의 능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헬라인은 지혜를 의지합니다.
첫 번째 헬라인의 관점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헬라의 지혜라고 얘기하는데 헬라는 그리스입니다. 그리스를 한자로 헬라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리스하면 자연 철학의 시발지 아닙니까? 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이성과 합리주의입니다. 이런 그리스 철학의 이성과 합리주의가 발전하고 발전하고 발전해서 꽃을 피운 최고의 절정이 무엇이냐 하면 18세기의 계몽주의입니다.
그러면 계몽주의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역시 합리성과 이성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의 계몽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기독교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기독교적인 성경의 내용과 합리성이 충돌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기꺼이 성경을 버렸습니다. (합리성이 최고이기 때문에) 계몽주의 신학자를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얘기합니다. 합리성이 있습니다. 이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과 부딪히면 성경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신화적인 얘기가 있다고 하고 인식의 문제가 있는 얘기들이 있다고 하며 동정녀 탄생도 부인해 버리고 예수님의 부활도 부인해 버리고 이제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계몽주의입니다.
2. 계몽주의자들의 한계 중의 하나는 다 이원론적으로 생각합니다.
현대 물리학의 난제 가운데 하나. 빛의 이중적 속성. 이것이 무슨 얘기입니까. 빛을 파장이라고 생각해서 접근해 보니까 빛은 파장(전자파. 음파등 주기적인 진동 1주기동안 진행되는 길이를 말함) 빛은 파장으로 움직인다. 맞습니다. 한편 빛을 입자다(물질을 이루는 매우 작은 낱낱의 알갱이) 입자로 움직인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동일한 사물이 파장일 수도 있고 입자일 수도 있느냐, 이것은 헬라의 논리로서는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순입니다. 빛은 파장이냐, 그렇다, 빛은 입자이냐, 절대로 입자일 수 없다, 이것이 계몽주의의 한계입니다.
계몽주의 시각에서 성경 바라보면 이해 못할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에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 땅에 의를 세우시는 하나님, 공의를 강수같이 흐르시게 하시는 하나님! 맞습니다. 정답이에요. 그런데 또 다른 곳을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랍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것을 계몽주의자들의 머리, 헬라의 지혜를 가지고는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둘 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둘 다 맞습니다. 그러나 헬라적인 시각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십자가를 증거했지만 헬라인들이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대가는 사망이다. 그렇지요, 우리 인간이 모두 범죄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대신 아들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죄에 대한 대가는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느낄 수 있고 동시에 그 죄인들을 끝까지 아들을 주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손을 맞잡습니다. 이것이 헬라 철학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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