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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Ⅱ 고전1:17~25 +
십자가의 능력Ⅱ 고전1:17~25 +
오늘도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 관한 태도입니다. 십자가에 관한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멸망을 당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구원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관심을 가져야 될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여러 차례 반복하는데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22, 2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라고 그랬잖아요. 세상에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크게 세 가지 접근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접근인데 표적을 구하는 접근입니다.
1. 유대인은 표적을 구합니다.
유태인들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표적이지요? 고린도전서 1장 22절을 보니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기적적인 표적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이 원했던 메시아는 무엇이었습니까? 해방자로서의 메시아, 승리자로서의 메시아였어요. 로마의 학정을 당하고 있는데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엄청난 강대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를 얘기하니까 뭐예요. 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어,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메시아는 그런 것이 아닌데……’ 이렇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항상 구하는 것은 어떤 기적적인 일, 능력있는 일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요나의 표적밖에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9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풍랑 만나서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아닙니까, 요나의 표적이 해석되십니까?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독교를 고통회피의 종교라고 자꾸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패배, 슬픔 고통 실패에서 건져 주시는 분…… 이해의 반쪽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생각을 해 봅시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생각을 하면 패배나 슬픔이나 실패 이런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패배, 슬픔, 고통 실패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2. 마틴 루터는 표현하기를 그것 안에서라고 그랬습니다.
그것 안에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요나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잃어버린 백성을 살리라. 니느웨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지요? 니느웨하고는 전혀 반대편인 다시스, 스페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리아 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스페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전혀 반대 방향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이 목적이라고 하면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축복해 주십니다. 무슨 축복입니까? 풍랑이라는 축복이에요. 풍랑이라는 축복이라고요. 풍랑을 주셔 가지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서 다시스로 가는 방법이 하나님을 만나는 니느웨 쪽으로 옮겨지잖아요. 만약에 만남이 목적이라고 하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풍랑을 통해서, 그것 안에서, 풍랑을 통해서 만나 주시잖아요. 이것이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만 의지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잘 보십시오. 유태인들이 말하는 표적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이에요.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를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통해서요? 전도의 미련한 것! 스스로 표현하기도 전도인데 전도가 미련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상 적인 눈으로 볼 때에! 십자가의 복음,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었다는 그 내용을 우리가 입술을 통해서 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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