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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는 평화. 눅 2:5~14절 +
땅에는 평화. 눅 2:5~14절 +
요즘처럼 우리 마음속에 평강이 기다려지는 때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평강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 속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도 평강이 없기 때문에 현실은 더욱 답답해져 갑니다. 요즘 사회의 모습은 더 답답합니다.‘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2월 - 튀르키예 대지진 때문에 5만명 사망 이재민 62만명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전쟁발발 이렇게 평안이 없었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원인이 무엇이고,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간인 우리가 다 알 수 없으나,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재난 앞에서‘인간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또 인간이 죽음 앞에 설 때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던지 다 똑같은 존재로 설 수밖에 없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1. 우리는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 안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도, 내 마음속에도 평안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재난도 있지만,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재난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평화를 파괴시키는 것은‘미움’입니다. 미움으로부터 테러가 생겨나고, 미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BC 3000년부터 1950년까지 무려 1만 4천 500건의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 5000년 동안 92% 기간이 전쟁 중이었고, 평화의 기간은 8%뿐이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연평균 12회씩의 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었고 전투가 없었던 날은 단지 26일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투쟁과 미움의 역사였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평화가 없는 위기의 시대는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했을지도 모릅니다.
2. 예수님의 평화는 어떤 평화였습니까?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평화요, 용서하는 평화였습니다. 누구나 다 참여하길 원하는 평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평화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작은데서 부터 연약한 아기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인간이 갖고 있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뒤집어 놓으면서 하나님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세상은 어두운 곳이며 예수께서 빛이 되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결코 길을 찾거나 실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어둡다’는 말은 악과 무지를 가리키고,‘흑암’이라는 말은 악과 고난을 치유할 방법을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것과 우리가 세상을 연합시키고 나아가 세상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화와 달리 예수님의 족보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특히 여인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모두 명문 가문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다. 또 가장 더럽고 추하고 부도덕한 사건들 가운데 몇 가지를 환기시키는 이름들도 있고. 근친상간의 이야기도 있으며, 기생 라합은 매춘부였습니다. 또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로 표기함으로써 다윗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역기능 가정에서 그리고 이 치명적 흠이 있는 인간에게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이것은 문화나 상류 사회나 할 것 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법에 의해 배제된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혈통이나 행위가 중요하지 않고.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덮고 나을 그분과 연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뛰어난 가문과 능력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위대한 일을 하시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3. 사랑은 내가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어린 아이로 그것도 말구유라는 찬란한 곳이 아닌 누추한 곳에 오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세워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시 용기와 희망을 불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부딪히는 어려움, 환란과 곤고 때문에 무너지고 나 자신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치고 다시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습니다.“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포기하고 너를 세우려고 이 땅에 왔는지 아느냐. 네가 고통 받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네가 지금 고민하고 절망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몸소 낮아지신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귀한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우리에게 다시 희망과 용기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찾아온 사건입니다. 여러분, 참된 평화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생깁니다. 참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품을 때 생깁니다. 내가 교만하고 연약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참 평화를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있다고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렇게 찾아오신 예수님의 평화를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있다고 배우지 못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가치 없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내려가 주님을 품어 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허락해 주십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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