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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눅6:32-38 +
주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눅6:32-38 +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인데 괴테도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바로 사랑함에 있습니다. 그것은 요일4:8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32-38 오늘 설교의 본문은 예수님의 여러 교훈 중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눅6:27에 사랑의 대상으로 원수까지 포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중에 예수님은 ‘너희는 주라’는 말씀을 강조 하셨습니다. 주라는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사랑은 무엇을 어떻게 주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1.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없습니다.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없습니다. 요일4:16에 그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진정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모든 것은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예수안에는 구제도 사랑입니다. 희생도, 봉사도, 헌신도, 위로도, 권면도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모든 것을 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사랑은 추상 명사가 아니라 ‘주라’ 하신 말씀대로 구체적인 행위로서의 동사입니다. 주는 것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국한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나 중에’주라 하신 말씀이 아니고 ‘지금’ 주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따라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랑 실천에 대한 행함이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라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히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강조해서 주지시켜 주시고자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후하게 흔들어 넘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생명주신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못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주라는 것에 머물 것이 아니라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겠다는 그 말씀까지 나가는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후9:6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대로 많이 주고, 많이 심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들로 하여금 많이 거두도록 후히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시는 축복을 받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십자만 봅니다. 그 십자가만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부활이라 하는데 이 부활은 영화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뒤에 이 영화로운 부활까지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도, 봉사도, 십자가도, 질수 있는 것입니다.
3. 힘이 있으면서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렘17:7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시1:1-2에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오만, 자기의 생각 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교만하다)
역시 성경을 여기까지만 보면 안 됩니다. 그래요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했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니 안돼는 것입니다. 아니 할 수 가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복있는 사람이 받는 복이 무엇인가 여기까지 가야 복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렘17:8 보시겠습니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시편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있는 사람이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을 주시기 위해 복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히 되어 주시기겠다 이 말씀입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복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끝없이 주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라’ 라고 명령하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히 되어 그 결실은 30배, 60배, 100배, 1000배도 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잃은 교회는 축복이 원망으로 보일 때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입니다.”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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