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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 창14:14-20 +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 창14:14-20 +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세상, 이상적인 세상이 도래하기를 꿈꾸게 됩니다. 유토피아는 아마도 인간이 만든 가장 역설적인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토피아는 이상향이라는 단어로 번역됩니다만,(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상 세계)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은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단어는 1516년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쓴 책의 이름에서 기원한 것으로 그리스어에서‘그런 곳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할수 없는 이상향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그렇게도 이상향을 열망하면서도 그런 이상향을 실현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성경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입니다.
‘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내재하는 문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끄러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실상은 내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문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문제의 실상을 약4:1-3에서 아주 분명하게 진단합니다. “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며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때 그것을 구조적으로 밖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어떤 시도도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죄인된 인간의 연약함을 겸손히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와 정욕을 잘 다스리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향은 아니더라도 보다 낳은 세상, 보다 낳은 현실을 꿈꿀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
오늘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블레셋의 통치자인 아비멜렉이란 지도자와 평화를 만들고, 평화의 언약(조약)을 체결하고 땅을 분할하여 브엘세바 라는 곳에 정착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도우신 은혜를 감사하여 나무를 심고(기념식수) 거기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야웨 하나님을 ‘엘 올람’곧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본문33절입니다.“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러면 여기서 아브라함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엘 올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약속이 가능했던 것은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접촉하면서 그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22절의 고백이 그것입니다.“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바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특별히 그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아내인줄 알지 못하고 아브라함의 누이로 알고 취하려 했다가 하나님의 경고 를 먹은 경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창20:1-7) 그래서 이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을 약속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결국 이 제안을 아브라함이 받아드리고 둘은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하고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브올은 우물, 세바는 약속, 시바라고 약간 고쳐 쓰면 ‘일곱’이라는 뜻이 되어 약속의 우물 혹은 일곱의 약속)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사건직후 그렇게 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3. 하나님은 예배자를 축복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유한한 인간에게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이심을 상대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의“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같은 표현은 예배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화친조약을 맺고 우물가에 에셀 나무를 심은 것은 그 곳이 앞으로 그의 새로운 삶의 근거지가 될 것에 대한 축복을 기대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영적인 에셀 나무를 심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에셀 나무는 일종의 상록수로 높이가 9m나 되는 나무입니다. 우물가에 이런 나무를 심었을 때 자연히 사막지대에서 이런 곳은 다시없는 좋은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요, 삶의 터전이 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기대를 안고 아브라함은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축복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축복하시는 엘 올람-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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