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엘 칸나 질투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4:23-31 +
엘 칸나 질투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4:23-31 +
하나님의 말씀은 복 받기 위한 신호등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내가 누구인지’‘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정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신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또한 부분적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의 이름의 하나가 ‘엘 칸나’-곧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늘의 본문 신4:14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엘 칸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을 자리에 다른 신 우상뿐만 아니라 다른 것 세속적인 것 탐심 취미 등 하나님이 있을 자리에 다른 것이 있을 때 우상숭배라 말합니다. 그냥 질투하는 분이 아니라 불같이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도대체 이 질투라는 세속적인 단어로 표기된 하나님의 질투-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1.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질투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단어인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의 가장 절실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는 질투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니 그는 그 질투 때문에 죽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범한 인류를 사단에게 내어주시기 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셔서 우리와의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의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됨의 거룩한 열매에 대한 갈망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세상과는 다릅니다. 내 사랑을 모르기에 미워서 내치시는 가벼움이 아니라 진심의 사랑을 보여주며 참 사랑을 깨닫게 해주며 그 사랑안에 안식하게 만듭니다. 질투의 국어사전적인 정의는 이렇습니다.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이다.
즉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질투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질투하는 분으로 표현한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질투가 얼마나 강렬하냐면, 그 질투 때문에 독생자를 죽는데 내어주실 정도였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도둑질하는 내 마음 안에 작은 여우를 잡아내야합니다.
2. 하나님은 사랑을 나누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사랑과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람은 사랑한다면서도 사랑하는 연인 곁을 울면서 떠나가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질투 때문이십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질투는 성경적이지만 시기는 비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13:4에도“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맞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질투합니다.
시기는 자기 권리가 없는 대상을 부러워하거나 험담하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질투는 본래부터 자기가 가진 당연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질투의 감정을 잘못 표현하는 과정에서 질투는 추한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지만 질투의 동기는 정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질투는 언제나 언약 사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만한 것이 돈이 되었다면, 명예가 되었다면, 취미가 되었다면, 권력이 되었다면 기억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그 순간부터 우리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엘 칸나-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관리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관리를 많이 강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퇴보와 몰락은 결국 관리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관리해야 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관계의 관리를 잘못하면 내 마음에 작은 여우가 하나님과 나사이에 끼어들어 그것 때문에 하나님 더 사랑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바라보는 일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마치 부부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아무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관리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런 것처럼 이 영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도 신실하게 관리되지 않는다면 소위 틈새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요즈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QT)을 신실하게 갖고 계십니까? 규칙적으로 그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며 살고 계십니까?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을 따라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살고 계신지요? 그분의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고 계십니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말씀대로 구역모임에 참여하여 서로의 믿음을 북돋아 주고 계신지요?
혹시 그 어느 날 개인적인 종말에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서서“그 분과의 사랑의 언약에 좀 더 신실하게 응답했어야 하는 건데 하면 늦었습니다.”그러나 다행스럽게 아직 기회는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남아있는 우리의 인생 속에 엘 칸나의 이름으로 다가 오십니다. “난 아직도 너의 사랑을 기대하고 있어. 내 이름은 엘 칸나-나는 너를 질투하며 사랑하고 있단다.” 할렐루야!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