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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눅15:3-10 +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눅15:3-10 +
불란서에 세계적인 철학자요, 수학자요, 과학자였던 파스칼이 지은 ‘팡세’라는 책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 ‘팡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 인간이여, 내가 비참해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 소득이 없구나. 내 자신 속에서는 진리도 선도 찾을 수가 없구나! 철학자들은 그것을 찾아 주겠다고 너에게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그들은 너의 참된 선이 무엇이며 너의 참된 간구가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네가 왜 비참한지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너의 불행을 건져줄 수 있단 말인가!” 이 팡세라는 작품을 통해 파스칼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토로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훌륭한 과학자요, 수학가요, 철학가지만 자기의 마음속에 허무와 공허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방황과 고뇌의 종지부를 찍은 후 파스칼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해서 이런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과학자의 하나님도 아니요, 수학자의 하나님도 아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믿는 자의 하나님인 것을 내가 알아 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 그 앞에 엎드려서 나갈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그를 품어 주시고 잃어버린 자화상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 텅빈 가슴이 꽉 들어차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삶의 혼돈은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개의 비유를 보면 잃어버린 대상이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가 얼마나 비중이 있나요?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방치한 채 헤맨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드라크마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치로 치면 한 드라크마는 가장 작은 단위 화폐에 불과합니다. 충분히 포기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탕자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아들은 불효한 패륜아에다 방탕하여 유산까지 탕진한 탕아입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귀히 여기고 찾고 찾습니다. 목숨 걸고 혹은 수고하며 혹은 문을 열어놓고 자지 못하고 찾습니다. 남 보기에는 별 거 아니지만 당사자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영혼을 귀히 여기라.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이어서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귀하게 여겨집니다. 전도자가 갖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믿음의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까? 이처럼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사랑만 있으면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로 가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그릇에다가 비유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것으로 가득 담으면 세상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담고 말씀을 담고 성령을 담으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뿐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롬14:17) 결국 무엇을 담느냐 것은, 그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영원이 달라진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강복의 말씀에 여러분의 마음에 오직 예수를 담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동전을 잃어버린 여자는 등불을 켰습니다. 어둔 밤에 동전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동전이 장롱 밑에 숨었는지, 찬장 밑에 들어가 있는지, 아니면 어느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지 불을 켜고 찾았습니다. 이처럼 빛을 발해야 합니다. 예수가 빛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발하려면 내가 먼저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죄에서 용서 받고 죄를 처리 받아 자유 함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어 하늘의 영광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신앙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행복한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3:15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복된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오게 해야 합니다. 또 행실의 빛도 발해야 합니다.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에게 구름 떼 같은 사람들이 따랐을까요? 그들의 영혼과 육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수준 높은 신령한 말씀을 전했을 땐 다 가고 열두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쓸어주셨어요. 그러기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신령한 은사는 물론 봉사와 헌신을 통해서도 우리는 전도해야합니다. 아니 우리의 삶 전체가 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여인은 동전을 찾기까지 부지런히 쓸었습니다. 뿌리면 난다는 농부의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반응에 상관하지 말고 씨를 뿌리면 반드시 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은 1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우리 하나님 기뻐하실 일을 하십시다. 우리 모두 전도하여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찾아 낸 여자가 친구들과 함께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 큰 기쁨을 돌려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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