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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한 삶 눅16:19∼26 +
영원을 향한 삶 눅16:19∼26 +
사회에서 소유를 근거로 해서 사람을 구분할 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됩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가진 자보다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팔복 내용이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자라는 구체적인 사회계층에 대한 위로와 희망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발췌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눅6:20-21"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가난한 자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주린 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요한 자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습니다.
1. 이 비유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비유는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가 미래에 받을 보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나사로는 가난한 자를 대신하고, 부자는 부요한 자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가난한 자의 삶 그 자체를 부추기고 예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더 깊은 안목으로 들여다보면 가난한 자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경건한 자의 삶의 모형으로 제시되어 있고, 부자의 삶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삶의 모형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우리가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는 그림 언어입니다.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역시 그림으로 비유하면 추상화이면서, 여기에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분명한 의미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깁니다. 여기서 부자의 입은 옷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그의 부의 척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시대 아주 부요한 사람이 아니고는 입을 수 없는 의상들입니다. 거기에 곁들여 이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연회를 즐기면서도 자기 눈앞에 비참한 상태에 있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 조그마한 관심이나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살았다는 것으로 그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 살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나사로를 헌데투성이 거지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배를 채워 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의 삶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희망이나 낙이 없는 삶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지 나사로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가난 가운데서 그가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천당과 지옥을 말해 주려고 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 현실에서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2. 재물 그 자체를 선악으로 규정하거나 문제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비유에서 재물 그 자체를 선악으로 규정하거나 문제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재물과의 관계에서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비유의 부자는 맴몬이라는 신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신을 숭배할 때 그의 눈은 어두워져서 가난한 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쾌락 자신의 배만을 채우는 것이 생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와 같은 삶의 결과는 결국 깊은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으며 그러한 고통은 제삼자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삶 즉 거듭남의 삶으로 실현되지 않는 삶의 결과 그 자체가 그에게 고통과 두려움이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한 고통을 비유에서 몹시 목말라 하는 부자의 고통 받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현실에서 자신의 영혼의 요구를 무시하고 외면하며 살았을 때, 그 영혼의 갈급함은 나중에 영원히 고통과 후회로 남게 되며 그러한 고통과 아픔은 영원한 생명으로 닿을 수 없는 큰골을 만들게 됩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면서 그의 진정한 내적 요구를 외면하고 살아갔을 때 죽음의 순간에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미래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3.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영적으로 부요하게 살아간 경건한 자의 삶
한편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희망이 다 끊어진 상태입니다. 직장도 없고, 연줄도 없고, 저축해 놓은 돈도 없고, 도와줄 친구도 없습니다. 헌데투성이로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고,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생의 희망을 둘 곳이 전연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것은 가난 가운데서 그의 삶이 어떠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현실에서 숨겨져 있는 진정한 삶의 길을 발견해서 그 길로 간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그의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의 약속을 현실에서 살았고,그 약속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영적으로 부요하게 살아간 경건한 자의 삶의 모형이며 진정한 경건에는 능력과 자족, 희망,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몸담고 살면서 재물, 권력과 무관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진정 가치 있는 삶을 놓쳐 버리면 안됩니다. 이러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이러한 것들로부터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삶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해 가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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