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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꿈과 해석 창세기 41:25-43 +
바로의 꿈과 해석 창세기 41:25-43 +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라고 하는 시간이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라고 하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라고 하는 시간은 사람이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요, 내가 원하는 시간이요, 양적인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라고 하는 시간은 내가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이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요, 충만한 시간이요, 완성의 시간이요, 질적인 시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바로 아들을 가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흘러갑니다. 아브라함이 원하는 크로노스는 자꾸자꾸 길어집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자꾸 초조함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의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에게 이삭이라고 하는 아들을 선물로 줍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 크로노스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 카이로스가 일치할 때에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내가 원하는 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때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나의 크로노스가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시간의 차이 속에서 인간은 갈등하고, 혹은 괴로워합니다. 때로는 탄식합니다. 이 시간은 자기가 깨어지는 시간이요, 죽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높은 뜻이 성취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1. 많은 분들은 질문을 합니다.
'왜 내가 원하는 시간, 나의 크로노스가 빨리 오지 않는가?' 하고 답답해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답답해하기 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카이로스에 내가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를 위해 기다려 주시고, 참아 주시고, 바라보아 주시고, 격려해주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나이가 벌써 50인데 내 나이가 벌써 60인데 자기의 시간, 자기의 크로노스에 민감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50이 된 나에게, 60이 된 나에게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대해서 질문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시간, 크로노스에 대해 민감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 그 카이로스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나의 시간, 나의 크로노스는 참다운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질문을 하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때를 단축할 수가 있나요?" 모르지요. 그러나 한 가지 대답할 수 있다면, 나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시킬 때, 그 때 하나님의 카이로스는 가장 단축된 모습으로 나에게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오늘 우리는 '옥에 갇힌 요셉'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만, 마음을 새롭게 하고 열심히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받았고, 그 속에서 장관급인 바로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해 주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요셉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만 의지해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 권세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붙들고 싶은 마음, 자기를 오늘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하는 자기 의에 대한 주장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있었지 않겠습니다. 크로노스란 자기의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이 하나하나 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의지할 대상이시며, 나를 이렇게 만든 그 사람들의 손을 넘어서 더 높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고,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이제는 내가 이 형편, 이 처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하는 철저한 감사가 그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때가 오기를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카이로스였습니다. 이것이 성취되는 데에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가? 41장 1절에 나옵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왕이 꿈을 꾸고, 요셉과 만나기까지 만 이 년의 시간이 소비되었습니다. 노예로 11년 죄수로 2년 이 시간 동안 요셉은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요셉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집니다.
3. 요셉의 크로노스이 시간은?
그 기다림의 시간은 아픔의 시간이요, 내가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요, 내 자아가 죽어버리는 시간이요,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서부터 하나님께로 이양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인격, 새로운 신앙 인격이 내 속에서 창조되고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카이로스을 위한 크로로스의 시간이 우리 인간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고통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려고 하시는가 하면, 그를 통하여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인격이 형성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먼저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순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시간, 나를 성숙시키시는 시간, 나를 깨뜨리는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를 통하여, 나를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과 깨어짐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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