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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Ⅱ 대상16:30-36 +
여호와께 감사하라.Ⅱ 대상16:30-36 +
고난 속에 많은 사람들은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말 대신에 ‘무엇을’이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무엇을’‘어떤’축복을 주시려 하실까요? 축복은 환란의 보자기로 싸서 주신다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환란의 보자기를 벗기는 순간부터 축복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란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후4:8“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아니하며.”우리는 다 잃은 것 같아도 남은 행복이 있습니다.“고난 속에서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할렐루야!
1. 성경의 가르침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고, 감사하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감사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마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특별히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토다(תודה)‘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사전에서 ‚토다(תודה)‘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야다 (יָדָע)‘와 같은 의미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야다 (יָדָע), 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감사하다‘라는 뜻과 함께 ‚찬양하다‘라는 뜻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경원어 상으로는 <감사>가 곧 <찬양>이요, <찬양>이 곧 <감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찬양>은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손뼉을치고 발을구르고 춤을추고 소리를 지르며 야댜 .토다 감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다 알도록. 다윗이 법궤가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즉흥적으로 감사하며 춤을 추었을까요?
2. 다윗은 현재의 은혜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를 감사합시다" 하면 "나는 감사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볼멘소리를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도 없고 자식들도 잘 되는 일이 없는데 무슨 감사 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감사에 극심한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내 생활을 가로막고 있어서 거저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요즘 성인병 때문에 많은 분이 고생들을 합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싸매고 걱정에 빠지면 뇌 속에 모르핀 분비가 중단됩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이 건강하고 정신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120-130세 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 영원한 생명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일종의 동맥경화입니다. 감사가 막히면 중병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현재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입니다. 즉 "구원의 삶" 입니다. 오늘 내가 "주안에서 살고 있다"는 이것이 축복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생각하면 감격할 일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현재 삶의 어려움, 환경의 좋지 않음 이 모든 것들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이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밀턴 은 말년에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에디슨 은 귀머거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에디슨에게 하나님은『발명왕』으로, 밀턴에게는『실낙원』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감사의 상급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현재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3. 다윗의 감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저는 이것을 미래에 대한 감사는 특별한 감사라 칭하고 십습니다. 오늘이후 다음 추수 때까지 이 특별한 감사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옛날을 돌아보면 그때 그 환경, 그 삶이 어떠했습니까? 가난, 무지, 초라함이 그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오늘의 삶을 상상이나 했습니까? 그런데 지금 까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우리의 지난날이 이렇게 왔듯이 장차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앞날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없이 살면 그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그래서 칼빈은 임종 시 고통 속에서도 "오늘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암송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세계는 위대한 것입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미래를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좋으신 계획이 우리 인생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크기는 영향력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이 클수록 더 큰 영향력의 사람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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