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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막16:15-20 +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막16:15-20 +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실제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는 말인가? 믿음 충만한 사람은 독을 빼지 아니한 복-생선국을 끓여 먹어도 안전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 독은 영적 차원의 독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이 구절은 영적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이 독을 마시는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의 위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고 회복되자마자 음주운전과 뺑소니사고로 남편이 구속되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며느리 앞에서 "우리 집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이런 흉한 일을 당하는 것 같다" 라고 미워하며 말했다면 그 말은 며느리에게 독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생활에서 독을 마시는 경우가 흔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독을 마시거나 독을 남에게 마시게 하며 산다. 독을 마시며 살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에서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 하리라'는 말씀은 매우 믿는 우리에게 강력한 능력을 갖게 하며. 그 능력은 해독의 능력인 것입니다.
1. 믿음은 신념이 아니다.
아무리 강력한 독이라도 그보다 더 강한 해독력을 가진 해독제가 있다면 문제는 풀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에게 이 세상 그 어떤 독이라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를 약속하셨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실제 믿는다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독을 마셔 본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다 죽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용감하고 순진한 사람들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믿는다는 것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믿는다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독을 마시고 죽은 사람들은 믿음을 신념이나 마음의 확신으로 오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다 구름과 바다(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히브리 11장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건널 때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근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고 하십니다. 고전10: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홍해)바다에서 세례를 받고”했는데 홍해를 건넌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일방적으로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하시는데. 우리 상식으로 보면 그들은 홍해 바다를 믿음으로 건너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애굽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걸어서 건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사실을 가지고 홍해를 건너려고 물속에 뛰어 들어 갔다가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사실 확인에 근거한 자기 신념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다 빠져 죽었습니다. 히11: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군대는 똑 같이 홍해 들어갔는데 원망하고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살고 홍해 물속에 들어가도 안 죽는 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 하고 같은 홍해 바다 물에 뛰어든 애굽 군대는 다 죽었습니다. 성경은 이래서 어렵습니다. 이 말은 믿음은 우리가 신뢰하는 것으로 시작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전인격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우리의 구원에 대한 그의 일방적인 의도이며 사람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3. 본문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해독제가 주어진다.
살면서 어떤 독을 만나거나 어떤 독을 마시더라도 해독할 수 있는 강한 능력이 주어진다. 이제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를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도대체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런 능력을 얻는 요인이 되는가? 해독제를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믿음에 달려있다.
그러면 믿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믿음은 예수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영접하여 결국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연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신 분이기에 예수에게 믿음으로 붙어 연합한다는 것은 곧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롬6:4-5“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와 함께 죽는 나는 누구인가? 그 '나'는 독을 마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나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가 예수와 함께 죽어 버리면 이제 거룩이신 예수가 내안에서 살게 되기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즉 어떤 독이라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자를 모시고 사는 것이다. 내 안의 예수는 선으로 악(독)을 이기신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연합하면 할수록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갚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옛사람 나는 죽고 이제 허물 많은 타인을 이해, 용납, 용서, 사랑하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평생 음식물과 더불어 지내는 것 2가지가 있습니다. 수저와 혀죠. 수저와 혀는 날마다 음식물과 함께 그 속에서 삽니다. 그런데 그 둘 중에 하나는 음식 맛을 보고 살지만 다른 하나는 맛을 전혀 보지 못하고 산다. 혀만 음식 맛을 보고 알고 느끼며 지넵니다. 수저는 음식속에서 평생 살지만 단 한 번도 그 맛을 보거나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 비유를 든 까닭은 우리가 수저 같은 신자가 되면 안됩니다. 수저처럼 구원의 맛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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