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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Ⅱ 마11:27-30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Ⅱ 마11:27-30 +
여러분 앨버트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우리는 다 기억합니다. 그가 아프리카 람바네레로 떠나가기 직전에 그가 살던 고향 도시지역 신문들은 닥터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사실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고 합니다. 그가 좋은 의료인의 조건, 또 여러 개의학위, 보장된 미래와 출세를 포기하고 떠나간다는 것이 그 때만 해도 굉장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한 기자가 이런 질문 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이런 결단을 하셨습니까? 슈바이처는 조용히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빚 갚기 위해서 입니다.”이 말은 얼마나 실감있는 고백입니까? 여러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롬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나는 빚진 자라.”그래서 바울을 지배했던 일생을 통한 삶의 동기, 그것은 빚 갚고자 하는 생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생애였습니다. 그의 살아왔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그는 이렇게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 첫째로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 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막2: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네 사람 네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들의 믿음 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중풍 병을 앓고 누워 있었던 자기의 친구, 이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로 오기만 한다면 예수님이 그를 짐을 덜고 도우실 것이다. 그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구원, 그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네 친구가 가졌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웃들을 도우면서 산다고 하지만 도와봤자 얼마나 도울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내가 도울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와야 할 그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가면 주님은 이 사람을 도울 수가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그리스인들의 사랑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우리의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야고보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메시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네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 친구를 도와줄 거다. 그러니까 주님 에게 맡긴다. 기도하면 됐지 뭐.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이야말로 죽은 것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네 친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 예수님이면 내 친 구를 도와줄 수가 있다. 내 친구는 다시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일어날 수가 있다. 친구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드디어 행함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줬던 믿음은, 행함은 창조적인 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받게 되면 그 도움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핑계나 구실이 있습니다. 도울 것이 없다. 내가 돕고 싶어도 나는 도울 것이 없다. 혹은 도울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핑계입니다. 돕고자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돕고자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도울 방법을 찾아내면 됩니다. 도울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3. 세 번째로 우리는 영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영적인 도움이 우선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막2:5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주님은 그 앞에 달아 내린 그 병자를 보면서 첫 번째 말씀,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네 친구의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조차도 없으면 없다면 어떡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대려 올수는 있잖아요. 인간의 불행, 인간의 허무, 인간의 방황 왜 그럴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이 죄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야하고 죄 때문에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목적,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 때문입니까? 그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아들을 나으리니 그 이름을‘예수라 하라’여러분 예수의 뜻이 뭡니까? 구원입니다.‘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그 구원 그것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십자가로 가신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삶의 딜레마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은 성공하고도 마지막은 실패입니다. 파산입니다. 파멸입니다. 절망입니다.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거기에 서기관들이 있었는데, 서기관들이 흥분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군데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서기관들이 흥분했어요. 그 흥분은 타당한 것이 예요. 이유 있는 흥분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한 가지, 뭘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첫 번째 미션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고 이 복음 전하여 사람들 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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