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부활의 없다는 사두개인. 막12:18-27 +
부활의 없다는 사두개인. 막12:18-27 +
저는 고난주간 십자가사건을 설교할 때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돌아와 순교하면서까지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 있었던 배경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제자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을 벗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하였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엑스자로 못박혀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는 예수살렘에서 돌에 맞고 쓰러진뒤 목메임을 당했습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메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몬 페르시아에서 폭도들에 의해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나는 형으로 순교했습니다.. 다대오 앗수르와 바사(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에서 전도하다 페르시아 지역에서 화살에 의해 순교하고. 사도 요한은 백살까지 온갖 시련을 다 겪다가 죽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칼에 목이 떨어지면서도 예수 이름을 부르다 죽었습니다. 죽음이 무서워서 도망쳤던 모든 제자들이 이렇게 순교하면서까지 외쳤던 메시지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이들이 순교하면서까지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1. 우리의 삶이 부활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적입니다.
오늘 설교의 목적은 주님의 부활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부활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이 설교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좀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한 설교가 아닙니다. 단지 감동이나 이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믿는 것으로 끝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이 부활신앙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을 찬양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부활신앙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두개인들은 본래 제사장 가문 출신들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 가운데는 교회를 드나들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그 신앙이 죽어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막12:18절도 부활이 없 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어느 날 예수님 앞에 아주 희한한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 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아내를 위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뭐 둘째가 죽고, 셋째가 죽고, 넷째가 죽고, 다섯째가 죽고, 여섯째가 죽고. 그래서 칠형제와 더불어 이 여인이 살았다고 가정을 하십시다. 부활의 때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매우 괴변 같은 질문을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이 라고 일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바 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회를 통해서 부활의 오해를 풀고 진정한 부활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아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두개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드나들면서도 부활신앙이 없어요. 도대체 왜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믿고 그리고 종교적인 그런 계율 앞에 익숙하고 심지어는 모세의 토라를 공부하면서도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고 부활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25절에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3.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두개인들의 오해를 불식하면서 진정한 부활체의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 대답이 25절에 있어요. 본문막12:2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우리가 부활할 때 입는 몸이 어떤 몸이 될 것이냐. 그중요한 열쇠가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의 뜻이 뭘까?
첫째로 저는 부활의 몸, 부활체라는 것은 우리의 개인성이 보존된다는 의미입니다. 천사들과 같으니라. 이 말은 천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비유의 말입니다. 천사와 사람을 혼동하진 마십시오. 부활체는 인간의 인격성과 특성을 그대로 보존합니다. 가끔씩 성경공부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부활할 때 우리 마누라가 나를 알아볼까요? 분명히 알아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제자들이 분명히 알아봤지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차별성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개인성이 보존되고 분명히 알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두 번째로 영원성을 갖게 되고.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인격성의 완성체를 말합니다. 결혼의 제도는 그 우리가 부활할 때는 없어질 것입니다. 천국 에서는. 그러나 결혼의 제도가 없다 고 해서 천국이 무미건조한 세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고 우리가 부활해서 새로운 몸을 입어도 우리는 인격체를 갖게 됩니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정의의 인격이라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상당히 오염되어 있어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러나 그날. 부활체를 입을 때 우린 완성된 인격체 여러분 완성된 인격체를 가지고 천국에는 완전한 사랑이 있는 곳, 사람들이 완전한 사랑을 나눌 수가 있는 곳. 한마디로 부활이란 뭐냐? 인간이 추구하는 존재의 완성체입니다. 아멘!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