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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한 사람이되자 수1:3-9 +
형통한 사람이되자 수1:3-9 +
여호수아는 110년을 살았습니다. 40년간 애굽의 노예로, 40년간 광야에서 모세의 시종으로 살았고 남은 30년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는 80년 동안 준비하여 30년간 사역한 셈입니다. 그런데 80년의 준비 기간 동안 그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체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구약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린양의 피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훈련인 유월절의 체험과 아말렉과의 전투를 통해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의 능력을 깨닫게 된 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적 상황이고 이제 막 지도자로 나서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장먼저 여호수아를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에 중요성을 강조 하십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을 붙드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얼마나 강해지느냐는 바로 성경과의 거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성경을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우리는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우리는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사람이 강해지는 방법은 오직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강해지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과의 거리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밀착된 인생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리더자의 자격요건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 누구나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왕 같은 능력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시대의 용어, 자기분야의 용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목사의 설교에 묵상이 없다면 그 설교는 어려워집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이야기, 신학적 이야기, 딱딱한 이야기가 설교에 그대로 노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묵상할수록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을 내 일상 언어로 내 전공분야의 용어로, 내 직장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내 전공분야의 용어로 해석이 되어지고 내 생활의 언어로 표현되어질 때 그 때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누에가 무엇을 먹습니까? 뽕잎을 먹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토해냅니까? 나뭇잎을 먹고 비단실을 토해냅니다 그것처럼 묵상의 능력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가장 필요한 일상의 언어로, 우리의 삶의 내용으로 표출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아야 만이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성경을 알아야 만이 세상의 가치와 충돌할 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있습니다.
몰몬교는 분명히 잘못된 것을 믿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경건합니다. 그 본부가 있는 솔트레이크 시 또한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범죄율이 낮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엄청난 패해가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을 넘어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탄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경험으로 알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믿지 못할 것이 많이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체험이 아닌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 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지도력을 리더십을 마련하는 기본자세입니다
3.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예수님은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고 반문 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님도 즉시 옳다고 답하시며 곧 부연하시기를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앎” 이 아니라 삶에 강조점을 두고 계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제단을 쌓을 때가아닌 제단을 다 쌓자 하나님께서 그 위에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준비된 것이 있어야 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말씀을 붙들 때만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우리가 넘지 못할 것 같은 한계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로 이때가 장애물이요 시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커보여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앞에 바벨론의 왕들은 얼마나 큰 존재였습니까? 다니엘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불 속에 던져 넣을 수도 있고, 사자굴 속에 집어넣을 수도 있는 모든 권력을 가진 왕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 하므로 그 왕보다 더 크신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자 다니엘은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장애물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왜 필요한지 아십니까? 기도는 세상에서 커 보이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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