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말의 능력 약3:2-11 +
말의 능력 약3:2-11 +
청이불문(聽而不聞)이요 시이불견(視而不見)이라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소리는 들어도 뜻은 듣지 못하고 형체는 봐도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깨달아 못 듣는다면 이 또한 답답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쓰는 세상 언어에도 이토록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물며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쓰는 말의 능력은 어떠하겠습니까? 말은 곧 미래를 창조하는 원리입니다. 미래를 창조하는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씨앗입니다. 좋은 생각은 성공한 미래를 창조합니다. 생각과 함께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만약 생각이 씨앗이라면 생각을 뿌리는 것이 말입니다. 사람은 말을 듣고 긍정하고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보면 생각 속에 항상 부정적인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사람은 들어서 긍정적인 게 아니라 원래 좋은 생각 속에 항상 긍정적인생각이 있어 남의 말을 들어도 무엇을 바라보아도 긍정적입니다.
1. 그 말이 우주를 움직이기 시작함
천지창조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따라 모든 우주는 형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에게도 언어를 통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창2: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이처럼 아담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권세를 주심으로 아담이 각 생물에게 준 이름 즉 말이 그들 각각의 미래를 창조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말만 바꾸어도 죽었던 세포가 살고.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고, 안 되는 일이 되고, 할렐루야! 우리의 혀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온 몸을 다스리는 것도 우리의 혀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혀를 잘 사용하면 인생을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믿는 대로 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에 걸린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찾아온 백부장에게 마8:13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2. 우리의 말의(언어) 크기만큼 우리의 미래는 커집니다.
날마다 죽것다고 해보십시오. 날마다 죽을 일만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색깔처럼 우리의 인생의 색깔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말을 사용할 때 기분도 찜찜하고, 우울하고, 되는 일도 없고, 온통 우중충해 이런 말 잘 사용하는 가정 치고 행복한 가정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크게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 생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우리말대로 시행하십니다. 민14:27-28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즉 창조적인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산은 우리의 인생의 장애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생의 모든 장애물을 말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매듭을 풀고, 길을 평탄케 하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에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과 환경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혀를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3. 우리 언어의 문제는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어느 날, 한 세미나 강사가 빳빳하고 깨끗한 100달러 지폐를 들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 100달러 지폐를 가지고 싶으면 손을 드십시오.”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이래도 가지고 싶습니까?”라고 말하며 지폐를 심하게 구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마룻바닥에 그 지폐를 떨어뜨리고 신발로 마구 짓이겨 지폐를 더럽고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구기고 짓밟고 더럽혀도 여러분들은 여전히 그것을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폐가 구겨지고 더럽혀져도 그 가치는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여러 번의 실패로 짓이겨지고 더럽혀져도 성도의 내적 가치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