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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는 비결 창12:1~9 +
복을 받는 비결 창12:1~9 +
구약에서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을 말하라 하면,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표본이 된 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온갖 아름다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135세까지 살았는데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돌아가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던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이런 아름다운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어떻게 하면 넘치도록 받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1. 영, 육간에 철저한 분리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분리를 요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삶, 분리된 사업, 분리된 직장, 분리된 가정 이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으려면 떠나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로 말하자면, 죄악 된 이 육신의 세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뉴욕 허드슨 강 하류에 쏠트라인(Salt line)이 이라고 하는게 있습니다. 쏠트라인이란?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그래서 날이 가물어서 강물의 흐름이 약해지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서 물이 강하게 흐르면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허드슨 강의 쏠트라인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일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도 각자의 개인에게 주어진 믿음과 영력에 따라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유혹에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쏠트라인은 지금현재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쏠트라인은 어떤 힘으로 밀려오는 세상 문화를 밀어내시렵니까? 그것은 예배뿐입니다.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는 것뿐입니다. 영, 육간에 철저한 분리된 삶을 살아야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조금도 의심치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전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곳 우르에서 가나안까지는 서쪽으로 1,200km 정도를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몇 개의 국가를 뛰어넘어야 하는 험난하고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11: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도 시험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가나안을 가려면 아라비아 사막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북서쪽으로 돌아가다가 머문 곳이 하란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란은 우르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우상을 섬기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곳의 환경과 조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만 그곳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창세기 11장 31절에 보면, 하란에 거하였다는 말의 원뜻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잠시 그곳에 머무른 것이 아니고, 아예 거기서 살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곳 하란을 떠나라고 명령을 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결국에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닮은 봉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 재직 중인 한 사회학 교수가 미국에서도 가장 더럽고 열악한 뉴욕의 빈민굴에 사는 청소년 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부모들은 거의 마약을 하고 있었으며, 부랑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동네는 윤락가였고, 알코올 중독자들로 우글거렸습니다.
그래서 사회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 청소년들은 90% 정도는 훗날 범죄자가 되어 형무소를 제 집 같이 드나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노교수는 은퇴를 앞두고 서재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25년 전에 학생들과 같이 환경을 조사하여 발표했던 글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아이들의 이름과 주소며 설문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학문적인 호기심이 나서 당시에 설문에 응했던 그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뒤져 200명 중에 180명을 찾아냈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단 4명만이 한번 감옥에 간적이 있었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25년 당시 그 동네는 윤락가였으며, 알코올 중독자들로 우글거렸던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그들이었기에 그 교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예상을 뒤엎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는 성인이 된 그들을 만나서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25년 전 한 여자 전도사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와서 주일학교를 운영함으로서 그 아이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적이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한사람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처럼 궁창의 빛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하나님의 한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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