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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과 부활이란. 고전15:12-20 +
종려주일과 부활이란. 고전15:12-20 +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마21:1-11,마가복음11:1-10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 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골고다를 향해 가시는 발걸음을 재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신 공생애의시간은 역사의 중심이며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기간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1주일간의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간에 해당하는 종려주일로부터 부활주일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키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회개하는 자세로 오늘은 세계적으로 모든 교회가 뜻있게 지키는 종려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제일 즐겁고 화려한 날의 한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제자를 보내어 나귀를 몰고 오게하여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기분이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안장을 만들고 남은 것을 길가에 깔아 카페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슥9:9에 예언한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지금 입성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길가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손을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1.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그리스도는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지상에서의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왕으로 군림할 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그러한 세상 왕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나귀와 예수와 나무가지의 관계에서 찾아보시면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탔습니다. 여기 나귀새끼의 의미를 찾아보면 나귀새끼는 '겸손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인의 승리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한 나무는 종려나무는 기쁨의 상징이며 의에 대한 전망으로 결혼식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폈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존경과 최고의 존귀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오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 이것은 곧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어떤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 심판주로 나의 구주가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로서 우리 기독교의 명절 중의 하나인 주님의 성탄절 그리고 부활절을 중요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2.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당시 예수님 시대에는 부활신앙에 대해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질 때만 하더라도 주께서 부활하신 부활신앙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확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몇 사람이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 좀 더 알아 두어야 합니다.
먼저 이 땅에 태어났다가 죽어 무덤에 장사된 자들이 언제 부활하느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저리로서 이 세상에서 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려고 재림하실 때 이 땅에서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의 뒷받침은 고린도전서 15장,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이하, 누가복음 14장14절, 요한복음 5장 25절 이하에서 주님의 재림 때에 지상에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때의 부활에는 의인들의 부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악인의 부활도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지구에 태어났던 모든 인간들 중 성도들에겐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되어지는 부활이요 불신자들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부활이 되겠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 때의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주적 종말의 때가 되어 심판하려고 재림하실 때는 의인이건 악인이건 간에 다 부활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주께서 약속하신 보상의 원리에서 부활의 몸은 같으나 상급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부활은 우리의 육적인 죽음 후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속에서도 죽음의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헌신과 봉사로 오늘도 주님은 부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 부활의 승리는 고통과 희생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교만이 죽어야 겸손이 부활하고, 이기주의가 죽어야 이타주의가 부활하며, 혈기가 죽어야 온유함이, 미움과 시기가 죽어야 용서와 사랑이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헌신과 작은 봉사, 작은 죽음으로 작은 부활의 기쁨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기록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제2의, 제3의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때의 부활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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