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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초월한 기쁨 빌1:12-18 +
환경을 초월한 기쁨 빌1:12-18 +
우리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환경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기쁨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요소라고 믿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나 기쁨에 대한 오해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없어지고 환경이 바뀌면 기쁨이 넘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 삶에 환경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혹이 환경을 초월한다는 것이 환경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필요합니다. 작업 환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좋은 작업 환경에서 보다 많은 능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교육한데도 환경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영적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신앙 성장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를 갈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아주 힘든 환경에서도 인물이 나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기쁨은 문제가 없어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 모든 사람들, 모든 문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에덴동산에서처럼 좋은 환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했습니까? 진정한 만족을 누렸습니까? 그들은 그 아름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에덴동산까지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감옥 밖에 있는 사람보다 더 환희에 찬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목표하느냐에 따라 기쁨이 충만해질 수도 있고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찰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마음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그 마음을 잘 가꾼다면 환경을 초월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은 선택에서 오는 것입니다. 선택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선택입니다. 사람을 선택하고, 환경을 선택하고, 때를 선택합니다. 교회도 선택합니다, 병원도 선택합니다. 이렇게 선택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무엇으로 기뻐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쁨의 조건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빌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이로써” 라는 말로서 “이것 때문에9(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모든 환경을 넘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쁨으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의 기쁨의 조건을 무엇으로 택할 것인가?”
천국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라면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가장 풍성한 사람입니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십시오. 슬픔이 아닌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미움이 아닌 사랑을, 의심이 아닌 믿음을, 염려가 아닌 평강을 선택하십시오. 선택은 간단하지만 그 결과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상실했을 때 좌절하다 못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겼을 때 더 분노합니다. 절망합니다. 문제는 잃어버린 것에 집중하는 바람에 아직도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한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닉부이치치 그는 손도 다리도 없지만 남아있는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많은 소유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은 풍부한 자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자원으로도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요6:9-13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수 안에 있으니 많은 소유가 아니라 작은 것으로도 오천 명을 먹이고 그것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시고 12광주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 예수님 안에 거하라 이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안에는 죄의 구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영혼구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환경에서도 구원해 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태어나서 한 번도 걷지 못한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가 베드로에게 구걸할 때 베드로가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것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왕상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보다 더 가진 것이 없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문제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 속에 하나님의 기회와 손길을 보았습니다. 절망 속에 하나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거듭 기억하십시오.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을 바라보는 안목입니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면 문제속에서도,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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