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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갈5:16-23 +
성령의 열매. 갈5:16-23 +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의 열매란 믿는 성도가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 맺어 보려고 하는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 안에서 생산해 내시는 것임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의 성품을 우리 삶에서 표현해 보려고 한다 할지라도 우리스스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의 지체 안에 성령님의 뜻과 목적을 대적하는 또 다른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성령님과는 반대로 거듭난 성도로 하여금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 중 아직도 이 전쟁에 대해 모르고 있다든가 여러분 안에 그런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내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분명 갈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가신 그 길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 안에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무언가가 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빌립보서 3장을 보면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아니면 짐이 될 것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이 기쁨이 될 것인지 슬픔이 될 것인지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세워놓으신 목적에 내가 동의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드시려고 일하고 계신다면 이 목적에 따라 내 자신을 주님께 복종시키기 위한 나의 모든 행동, 생각, 그리고 결정은 인생을 훨씬 더 단순하고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나는 성령님과 동의하에 올바른 교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생각, 행동, 결정 등이 육신이나, 자아가 세상을 향하게 되면 나는 즉시로 갈등과 고통과 문제에 둘러싸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나는 성령님의 역사를 거역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쩌면 여러분과 상당히 비슷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을 성경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회교도나 불교도나 힌두교도로 태어나지 않았지요? 또한 여러분 대부분은 술주정뱅이 집안 출신도 아닙니다. 지금 보니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방종교나 죄악으로 얼룩진 과거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주님께 와서 구원받고 나서도 “버려야 할” 옛 생활이 별로 없겠지요. 마약 중독에 빠진 적도, 알콜 중독에 빠진 적도, 간음이나 음행을 저지른 적도, 우상 숭배를 해본 적도 없이 비교적 깨끗한 과거를 등에 업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빌립보서 3장을 보니 여러분처럼 종교적 분위기에서 비교적 깨끗하게 살았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좋은 과거마저도 육신에 속한 것이라면 육신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나쁜”육신이든 “좋은”육신이든 육신은 육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적 육신, 도교적 육신, 이슬람적 육신이나 장로교적육신이나 똑같은 육신일 뿐이지요.
2. 이 말씀에 따르면 구원받은 사람은 세 가지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3절을 보겠습니다.“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세 가지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첫째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이 둘째입니다. 참으로 선한 것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자, 그런데 세 번째가 무엇인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둘째는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리고 셋째는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육신이 선한 것, 좋은 것을 하더라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3. 비록 내가 육체를 신뢰할 만도 하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육체를 신뢰할 만한 사람,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 다닌 사람들, 어려서부터 엄마가 들려주는 성경을 듣고 자라난 사람들, 학교도 가기 전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줄줄 외던 사람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늘 교회에 다녔고 술집에는 한 번도 안갔던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결혼 전에 순결을 지켰고, 댄스홀에는 얼씬도 안 해본 것, 이 모든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다소 출신 사울보다는 더 종교적이거나 헌신했던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께서는 이 사울이라는 사람보다 더 자기 자신의 육신을 신뢰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견해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을 신뢰하고자 한다면 바울만큼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훌륭한 육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5절에 보니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축복을 지닌 사람입니다. 게다가 베냐민 지파에 속했다고 합니다.
다른 지파들이 배교했을 때 진리를 고수하던 지파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입니다. 모든 히브리인들 중 최고의 히브리인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회당에 가서 누가 가장 뛰어난 성경학도인가 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다소 출신의 사울”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사울이라도 우리스스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의 지체 안에 성령님의 뜻과 목적을 대적하는 또 다른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안에 또 다른 육신의 법을 성령의 법으로 다스릴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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