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질문은 늘 따라온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이 말씀은 오늘날 복잡한 직업구조로 인한 교대 근무나 병원 응급실의 당직, 또는 경비 등은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가? 대답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일(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제4계명은 안식일을 구별해서 지켜야 할 당위성 뿐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마저 제시하고 있다. 제4계명에 명시된 두 가지 지킬 일은 주일(안식일)에는 어느 누구도 일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한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출 35:3).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문자적으로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썼다. 성경에 보면, 안식일에 나무하러 갔던 사람을 죽인 일이 있다. 나무를 하는 것은 일을 할 뿐 아니라 불을 피우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민 15:32~26).
오늘날도 유대인 정통파 종교인들은 엄격하게 안식일을 문자대로 지킨다.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유대교 정통파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십여 년 살았었다. 때로 안식일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문을 두드린다. 여름인데 에어컨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좀 내려 보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기 집의 에어컨을 자기가 켜면 되는데 못 켠다. 아이들을 보내주면, 에어컨을 만지면서 놀 수 있겠느냐고 한다. 전원을 눌러달라는 이야기다. 배가 고프다면서 자기 집의 냉장고 문을 열어 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한 적도 있다. 그 집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지만,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불이 켜지기 때문에 문을 열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안식일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한다. 자동차의 엔진을 가동시키면 불꽃이 튀므로 불을 피우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심지어 한번은 교회에 갔다가 오는 길인데 동네 어귀에 서서 우리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와 줘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급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가면서 물으니까,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자기들은 불을 피우지도 끄지도 못하니 우리가 와서 꺼달라는 것이다.
그들의 안식일 규례는 문제가 있다. 성경 말씀에 나온 안식일의 규례를 진정한 의미로 되새겨서 지켜야 한다.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되는 두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하지 말라는 것은 일만 안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이것은 하나님을 잘 기억하고 높여 드리기 위한 방편이 돼야 한다. 불을 피우지 말라는 것은 심지어 여인들도 집에서 안식일에 불을 피우고 요리한다고 시간을 다 보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우선을 두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외형적으로만 지키기 위해 급급한 것을 보면 정통파 유대교인의 안식일 규례는 정말로 황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진정한 영혼과 육체의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서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구체적으로 주일·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살펴보자.
1) 주일에는 무엇보다 예배가 우선이 돼야 한다.
주일(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그분의 구원을 기억하고 그분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 원리는 바로 제4계명이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경의 다른 절기들과 마찬가지로 주일은 성회로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우선이다(레 23:7, 민 28:18, 26, 신 16:8).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돼서는 안 되고, 소홀히 여겨져서도 안 된다. 정말 부득이 한 경우, 예를 들어서 병이 나서 움직일 수 없을 때에는 집이나 병원에서 예배한다. 안식일은 그냥 토요일 다음날이 아니다. 엿새가 온전히 그날의 예배를 위해서 준비돼야 한다.
한국교회의 전통은 주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꼭 토요일에 목욕하러 가고 옷을 준비하고 마음을 준비하고 그날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일마저도 등산복을 입고 오는 교인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 자칫 방심해 주일을 지키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무시해서,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분’으로 생각함으로써 예배를 소홀히 하고 들로 산으로 나간다거나, 집안이나 친구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심지어 바쁘다는 등의 이유로 공예배를 빠지는 일들은 용납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주일 성회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것은 주일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주일에 예배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간증 가운데 서로 나누는 등의 일들로 오로지 하나님을 높이는데 힘써야 한다. 이것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방해하는 일은 오로지 사탄의 유혹으로 생각해야 한다. 오직 주일에 그분을 집중적으로 기억하고 높임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자 되심과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붙들어주심으로 구원받은 것을 개인적으로 고백하고, 공회 앞에 분명히 드러내는 예배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이요 정체성의 문제이다.
2) 주일에는 일하기를 쉬어야 한다.
성도는 주일에 오직 예배에 더 집중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를 찬양하고 성도의 교제를 위해서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쉬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 이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간호사의 교대근무, 회사택시의 3부제, 일 년에 한 번도 쉴 수 없는 정유공장의 기계들을 다루는 근로자들, 병원 응급실과 소방서와 경찰 등의 긴급을 위한 준비들, 그리고 도둑 많은 세상의 경비를 하는 일들 등은 주일을 성수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고민하게 한다. 그렇다고 그런 직장들을 무조건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안식일을 구별해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초대교회 교인들은 유대인의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에 모였다. 그들 중에는 종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새벽에 모이고 하루 종일 주인을 섬기다가 저녁에 일과가 끝났을 때에 다시 모였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므로(막 2:27) 이럴 경우들은 부득이 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대교리문답 제117문). 다행히 대부분의 직장들은 주일을 쉬게 돼있어 감사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득이한 경우에라도 주일을 구별하고 쉬며 최선을 다하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거나, 쉴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한 주간을 열심히 살지 않아서, 또는 안식일이라도 돈을 더 벌 목적으로 가게의 문을 여는 일 등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주일에 대해 나태한 것이요,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3) 주일에는 물건을 사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신앙양심의 가책이 없이 주일에 물건 매매를 자유롭게 한다. 교회마다 주일이 되면 간식 포장지 등이 쌓이는 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안식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제4계명에는 분명히 ‘네 집에 거하는 종들이나 객이라도’ 쉬게 하라고 했다. 그들까지라도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주일에 물건을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일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돈만 안식일에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토요일에 돈을 미리 주고 주일에 떡과 간식을 배달시키는 일이 있다.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그 배달을 위해서 주일에 일해야 하지 않는가? 나만 영원을 사모하고 예배하면서 내 이웃은 썩어질 땅의 소득을 위해서 일하게 하고 결국 그가 예배할 기회를 빼앗아도 되는가? 차라리 그가 불신자라도 한 두 시간 일할 일당을 그냥 주어서라도 그가 예배하도록 인도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주일예배를 다 드렸으므로 내가 자유롭게 쇼핑도 하고 가족끼리 식당에 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배도 드렸겠다, 내가 내 돈을 갖고 사먹겠다는데 이것마저 금지하면 너무 율법적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러한 생각은 이기주의적인 생각이다. 나는 예배도 드렸고, 하나님 앞에 구원도 받았으니 다른 이들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러는 한 주간 중에 24시간을 구별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토요일 저녁 해진 직후부터 주일 저녁 해지기 직전까지 이 규칙을 지키고 주일 해 진 이후에는 자유롭다고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주일은 ‘나만의 주일’, ‘내가 정한 주일’이 되지 않고 온 성도의 주일이며, 나아가서 이 세상에 ‘주님의 날을 알리는 역할로써의 주일 성수’가 되면 더 낫지 않을까?
4) 주일에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
물론 안식일에 물질을 쓸 수 있다. 헌금을 드리는 일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이므로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그 외에도 구제를 하는 일, 예배에 오기 위해서 자동차 기름을 써서 운전해 오는 일, 성도가 주일에 수고해 심방을 하고 위로하는 일 등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된다.
많은 교회가 주일성수와 관계해서 고민하는 일 중의 하나는 주일에 교회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다. 주일, 교회에서 돈을 받고 커피를 팔아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교회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평일에는 교회 카페를 열지만 주일은 아예 카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카페가 순전히 비영리적인 목적이고, 봉사하는 이들이 전적으로 자원 봉사이고,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일이요, 더구나 그 이익금을 전액 장학금이나 선교나 구제를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결코 주일을 범하는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 불우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다음세대를 위해 생각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커피 판매 수익은 순전히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헌금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성전청결사건을 예로 들면서 ‘감히 성전에서 장사를 해?’라고 오해한다. 요한복음 2장에서 주님의 청결은 이러한 일과는 전혀 다르다. 제사장에게 뇌물을 주고 성전에 들어와서 이방인들이 기도하고 엎드려서 경배해야 하는 그 뜰에서 짐승을 풀어놓고 환전하고 호객하고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줄 하나 쳐놓고 경계선 안에 있는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그렇게 분노하신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오로지 자기의 영리를 위해서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5) 주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한다(마 12:8, 막 2:28, 눅 6:5). 즉 그날은 오로지 주인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 안에 사는 성도들은 나머지 6일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안식일에는 특히 안식일의 기본 개념인 안식과 좀 더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신약성경에서 여러 번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안식일에 대해 논쟁하셨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18년간이나 귀신이 들려 꼬부라져서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치셨다. 회당장이 이것을 보고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을 냈다. 예수님은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대답하심으로 반대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비로소 영혼과 육체가 안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내 이웃의 영적인 그리고 육적인 안식을 위해서 수고하는 일들은 주일을 잘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주일에 목회자가 피곤하도록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 교사들과 성가대원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일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섬기는 일, 불을 피워서라도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교우들을 대접하는 일 등은 무척 힘이 드는 일들이지만 그러한 일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된다. 그들의 수고로 다른 성도들이 영육 간에 쉼을 얻고 더 하나님을 집중해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의 삶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주일에 공부해도 되는가? 학생들은 늘 시간에 쫒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안식일의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공부가 되므로 가급적 주일에는 공부를 떠나서 예배와 쉼을 갖는 것이 좋다. 엿새 동안 정말 ‘코피가 터지도록’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안식일은 마땅히 쉬어야만 할 것이다. 예전에 어떤 학생들은 예배 후에 집에 와서 밤 열두시까지 무조건 자다가 ‘열두시 땡’하면 일어나서 공부했다고 한다. 갸륵한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부득이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주중에 병이 나서 과제가 미뤄 졌거나, 월요일에 시험이 있는 경우 등이다. 부득이 한 일일 경우에도 주일 공예배에 반드시 참석하며, 그 외의 시간에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이다. 평상시에 주일 공예배 후에 상습적으로 학원에 가거나, 한 주간 게을러서 주일 오후는 무조건 공부로 달려가는 일은 썩 옳은 일이 아니다. 공부가 나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온전히 생각하며 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나가면서
오늘날 제4계명이 너무 쉽게 여겨지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주님의 날이 쉽게 여겨지는 것은 곧 주님이 그의 백성들에 의해서 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나님은 주일·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고 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높이고 주일성수하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주일성수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김하연 목사(대구삼승교회)/도전받는 교회 전통-주일 성수 (2), 기독교보 (201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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